대한민국의 기업인. 삼성그룹 창업주 겸 초대 총수 · 삼성물산 초대 회장.
부농의 아들로 태어나 젊은 시절엔 한량처럼 보내기도 했고 사업도 몇번 말아먹었지만, 힘든 순간 속에서도 재기에 성공한 이후 무역업, 제분업, 제면업, 모직업, 설탕, 비료 사업 등에 뛰어들며 삼성을 국내 최상위 대기업으로 성장시켰고, 말년엔 반도체 산업을 위시한 제조업에도 진출해 이후 삼성이 글로벌 대기업으로 성장하고 대한민국이 반도체 강국이 되는 밑거름을 쌓았다.
오늘날 재계 최상위권 대기업 그룹인 삼성그룹, CJ그룹, 신세계그룹이 모두 이병철을 1세대로 하여 비롯되었다. 그 외 현재는 기업 규모가 작아졌지만 제지업계 최대 규모 기업인 한솔그룹과 국내 2위의 미디어 기업인 중앙그룹과 유통특화 준대기업인 BGF그룹까지 포함된다. 이병철을 시초로 하는 범삼성가는 현재도 대한민국 재계에서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외에도 차남 이창희의 고명딸 이혜진이 이끄는 래딕스글로비즈 및 래딕스플렉스와 그녀의 남편 조명희가 이끄는 디엠퓨어텍, 3녀 이순희의 아들인 김상용이 이끄는 알머스(前 영보엔지니어링) 등도 범삼성가에 속하며 이들도 삼성 등 범삼성가 기업들과 상부상조한다.
1976년에 위암 판정을 받았으나 수술을 받고 건강을 회복하였고, 이후 삼성정밀 등을 설립하고 1982년 삼성반도체통신을 설립하였다. 이 밖에도 문화재단·장학회 등을 설립하였고, 백화점·호텔 등의 경영에도 참가해서 사업의 다각화를 통하여 국가경제 발전에도 크게 공헌하였다. 1981년 2월 한일경제협회 고문에 위촉되었고 이듬해 다시 재위촉되었다.
미술에 심취했던 이병철은 많은 소장품을 수집하거나 소장해 오다가 호암미술관을 건립하였고, 국악과 서예에도 큰 관심을 가졌다. 1977년 삼성미술문화재단 이사장이 되었으며, 현대그룹 회장이었던 정주영 등과 함께 울산에 공단을 조성하는 데에도 일정부분 투자하거나 기부를 하여 설립에 일익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이는 후에 울산공단으로 크게 발전하였다.
1985년에 폐암 판정을 받았고, 이후 금탑산업훈장을 비롯하여 세계최고경영인상을 받았다. 1987년 11월 초 이병철은 한일경제협회 고문직을 사퇴하고 같은 달 19일에 78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그의 묘소는 현재 용인에버랜드에 위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