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30일, 일본 히로시마시 인근에서 일본에서 일을 하며 생계를 잇던 아버지 황봉룡과 어머니 구정순 사이의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이후 부모를 따라 아버지의 고향인 경상북도 월성군 강서면(현 경주시 안강읍) 육통리 소평마을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 뒤 고향에서 안강북부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포항 영일중학교에 입학했다가 2학년 때 안강중학교로 전학했다. 그리고 안강농업고등학교(현 안강전자고등학교)를 거쳐 1966년 대구교육대학을 졸업하고 1979년까지 국민학교 교사로 일했다.
교사 재직 중이던 1978년 한국사회사업대학(현 대구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야간부를 졸업하고 곧 교사를 그만둔 후 공부에 매진하여, 1980년 경북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체육교육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자녀 셋을 둔 상태에서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연구원 과정에서 10여 년간 공부하였다.
1987년부터는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생리학교실 교수로 근무하였다. 1990년에는 국민대학교 대학원에서 생리학 전공으로 체육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90년대부터 방송에 주로 출연하면서 재미있는 이미지를 드러내었으며 SBS 호기심 천국, <황수관 박사의 신바람 건강법>이라는 책 등으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한때 정계에도 입문하였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마포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박주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2년부터 한나라당으로 정치 노선을 변경하였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비례대표 공천 신청을 하였으나 탈락하였다. 같은 해 1월에 개그콘서트에 특별출연했고 10월 박근혜 대한민국 대통령 후보의 대외협력특별보좌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11월까지 MBN 고수의 비법 황금알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하였다.
그러나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하여 2012년 12월 12일에 자택에서 호흡곤란 증세를 보이다가 쓰러졌다. 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았으나 이미 병세는 악화되었고 결국 동년 12월 30일 서울특별시 강남구 도곡동 강남 세브란스 병원에서 간농양에 의한 급성 패혈증과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때 그의 나이 67세였다. 유족으로는 부인 손정자씨와 아들 진훈, 딸 진아, 명아씨가 있다. 사후 세브란스 병원의 장례식장에서 장례식이 치러졌다.
"황 교수가 일을 매우 열정적으로 하여 일 중독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과로했던 것이 컸다. 평소 황 교수는 건강관리를 열심히 했지만 전국을 돌며 하루에 강의를 3번이나 할 정도로 빡빡한 일정을 뛰었기에 가족들과 지인들이 건강이 상할 것을 우려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