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기 있는 간드러지는 목소리와 중후한 목소리를 넘나드는 능수능란한 연기, 거기에 웬만한 코미디언과도 대결할 수 있는 순간적인 재치까지 보유한 놀라운 성우다. 수많은 팬들을 확보해 내레이션, 방송 진행, CF 등 여러 방면에서 활약하던 인기 성우였다. 특히 SBS의 간판 음악 프로그램인 'SBS 인기가요'에서는 네~~~!라는 유행어 아닌 유행어로 많은 이들이 장정진을 따라하면 무조건 네~라는 단어를 따라했다 그 외에 성우 관련 단체 회장을 맡았다. 지금까지도 30~40대 이상 세대들에게 아는 성우를 말해보라고 하면 장정진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을 정도로, 생전 성우들 사이에서도 독보적으로 많은 인기를 얻은 인물이었다.
본래 목소리가 대단히 중후해서, 무명 시절을 벗어난 후에 맡은 역이 80년대 드라마 전우나 형사 25시 등의 광고 내레이션. 오늘날의 말 없이 소리만 나오는 광고와는 달리 내용은 조금 성인적인 드라마들 카피를 시적인 목소리로 읊는 것은 정말로 대단한 일. 리즈 시절에 그럴 정도였으니... 그러나 데뷔 시절부터 꿈꾸던 연기는 폼 잡는 역이 아닌, 뽀빠이 연기였다고 한다. 나중에 투니버스판 뽀빠이를 맡아서 그 소원을 이루었다.
유머 1번지 시절부터 코미디 프로그램의 나레이션도 많이 맡았다. 특히 폭소클럽에서의 나레이션도 유명한데, 엔딩에서 "즐거우셨다면, 우산을 활짝 펼쳐주세요~" 라는 멘트가 유명하다. 홍록기의 회고에 따르면, 매번 코너가 끝나면 출연진들을 일일히 격려해줄 만큼 정 많은 성격이었다고 한다. 쇼 행운열차에서도 나레이션을 맡았는데, 2004년 초에는 '표탐정의 추리와이드' 코너에서는 직접 출연해 연기까지 했다. 이런 코미디 프로에서의 활약으로 2003년 KBS 연예대상에서 최우수 성우상을 수상했으며, 장정진이 사망하고 난 뒤 방영된 폭소클럽 방송분에서는 엔딩 후 장정진을 추모하는 시간을 마련하기도 했다. 가장 친했던 코미디언은 김미화였는데, 김미화가 귀농 후 살고 있는 이천의 집 부지도 생전 장정진이 추천해준 곳이었다고 한다.
달려라 하니를 워낙 많이 재방송했는지, 주로 하니 시리즈 홍두깨 선생님 역으로 유명하다. 특히 홍두깨 특유의 웃음인 이~~~~히히히히히~라는 음흉한 웃음소리 대명사로 떴다. 2002년 개그콘서트 121회 등지에도 두 번 정도 나와서 하니 역을 맡았던 김지혜를 도와주었다.
2004년 9월 13일, 일요일은 101% 추석 특집 녹화에서 떡을 빨리 먹는 게임을 하던 중 질식해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이 후 1달에 가까운 치료 끝에 10월 11일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별세했다. 지금까지도 한국 방송사에서 최악의 방송사고 중 하나로 꼽히고 있으며, 이 사건 이후로 예능에서 가학적인 게임을 하는 것이 자제될 정도로 방송계에 많은 변화를 몰고 왔다.
2004년 9월 13일 오후 7시경 서울특별시 강서구 화곡동 KBS 88체육관(現 KBS아레나)에서 예능 프로그램 일요일은 101% 서브 코너 '골목의 제왕' 추석특집 방영분을 녹화 중이었는데 해당 게임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와 비슷한 형식의 먹는 내기 게임으로, 여기서 장정진이 게임 진행 과정에서 송편을 급하게 먹던 중 송편이 호흡기를 막아 질식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당시 출연진 중 심권호가 하임리히법을 할 줄 알았고 장정진의 증상을 한 번에 알아봤는데도 장정진은 괜찮다며 구토를 하러 화장실로 갔고 이후 장정진이 돌아오지 않자 심권호가 아무래도 걱정되어 따라갔지만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는 게 KBS의 주장이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고 해도 당시 제대로 된 의료진만 배치했더라면 본인도 별다른 거부 없이 진찰을 받았을 것이고 이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이건 기획자의 책임이 엄청났다. 다른 패널의 눈치를 보면서 빨리 먹는 게임을 촬영하면서 목구멍이 막히기 쉬운 떡을 지정한 점과 마실 물, 응급처치반도 없이 기획했다는 점에서 말이다.
사건 발생 3시간 만에 한 네티즌이 해당 프로그램 홈페이지 시청자게시판에 사고 소식을 처음으로 알렸고 9월 19일 장정진 성우가 항상 내레이션을 맡아 왔던 SBS 인기가요에서도 당시 MC였던 김동완 - 박한별이 사고 소식을 언급하고 쾌유를 비는 멘트를 하기도 했다.
일단 장정진은 늦게나마 발견되어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수많은 팬과 일반 대중들이 쾌유를 기원했지만 이들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의식을 되찾지 못하다 약 1달여가 지난 2004년 10월 11일 오후 6시 23분 경 서울 이화여자대학교 목동병원 중환자실에서 질식 탓에 발생한 다발성 장기 부전에 의한 심정지로 인해 끝내 향년 51세로 사망했다.
사후 그의 시신은 이대목동병원 장례식장에 안치된 후 빈소가 차려졌으며 10월 15일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성우극회장으로 영결식을 거행하고 9년 전에 사망한 아버지를 모셨던 천안공원묘지에 같이 안장되었다.